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가짜 드미트리 (문단 편집) == 배경 == [[유럽 러시아]] 지역은 오랜 기간 초대 노브고로드 공작 [[류리크]]의 부계 자손들, 소위 [[류리크 왕조]]의 군주들이 다스려왔다. 하지만 [[이반 4세]]가 선포한 [[루스 차르국]] 시기에 이르러 러시아의 군주 자리를 세습해오던 왕실의 핏줄이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은 이반 4세 그 자신이었다. 사실 발단은 이렇다. 당초 이반 4세에게는 첫 부인 아나스타샤가 낳은 자신의 핏줄을 이은 직계 아들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 장남인 이반이 황태자로 공인되어 차기 [[차르]]위를 계승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황태자비 옐레나 역시 [[임신]]한 상태였기에 계속 왕실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반 4세는 황태자비 옐레나가 너무 더워서 얇은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임산부]]는 체온이 높아 더위를 많이 탄다.] 복장이 경박하다는 이유로 벌컥 화를 내며 옐레나를 마구 구타하였고, 그 바람에 옐레나는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다. 당연히 황태자는 그 유산소식에 크게 상심하고 분노하여, 이전 아내들을 수도원에 보낸 것도 모자라 왜 죄없는 아이를 태어나기도 전에 죽이냐고 따지면서 아버지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이에 화가 난 이반 4세는 그만 [[정줄놓|정신줄을 놓으셨고]] 부지깽이를 집어들어 황태자까지 마구 두들겨패고 말았다. 이반 4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황태자는 죽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이반 4세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큰 소리로 슬피 울면서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를 한다고 해서 시간이나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결국 머리에 중상을 입은 이반 황태자는 3일 후에 숨을 거두었다. [[파일:Iván_el_Terrible_y_su_hijo,_por_Iliá_Repin.jpg]] ||[[일리야 레핀]](Илья́ Ефи́мович Ре́пин, 1844년 ~ 1930년, 러시아),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Иван Грозный и его сын Иван 16 ноября 1581 года)>, 1885년, 캔버스에 유화, 199×254cm,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챠코프 미술관|트레탸코프 미술관]] 소장. 본래 레핀은 이 그림에서 러시아 민중을 억압하는 기득권 세력과, 그들에게 탄압받고 저항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은유하려 했다. 즉 레핀은 이반 4세를 억압자로 표현한 것. 그런데 재미있게도, 레핀이 이반 4세의 표정을 너무나도 실감나게 묘사하는 바람에 오히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이반 4세에게 동정심을 갖게 되었다고.|| 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으로 인해 황태자를 잃었으나 이반 4세에게는 다행히 보위를 이을 수 있는 다른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들 병약하거나 요절해서 자식이 없다는 것. 이반 4세가 죽은 뒤 차르가 된 [[표도르 1세]]는 자식도 없이 얼마 못가 요절했고, 그 외에 2번째, 7번째 아내들이 낳은 바실리와 드미트리도 어린 나이에 요절하는 바람에 결국 류리크 왕조 직계의 대는 끊기고 말았다. 게다가 방계 쪽으로 눈을 돌리려 해도, 이반 4세의 사촌과 그 가족들이 있긴 했으나 이미 이반 4세에 의해 반역죄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지 오래였다. 결국 이반 4세는 자기 손으로 자신의 왕조의 대를 끊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인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반 4세의 마지막 아내 마리야 표도로브나 나가야(Мари́я Фёдоровна Нага́я)가 낳은 막내 아들 우글리치 공작 드미트리였다. 드미트리는 1582년에 태어나서 1591년에 죽었다. 하지만 드미트리의 죽음을 놓고 이런저런 뒷이야기가 많았던 까닭에[* 나중에 차르가 된 [[보리스 고두노프]]가 [[바실리 4세|바실리 슈이스키]]를 시켜 조사한 발표에 따르면, 드미트리는 [[간질]]을 앓았고 손칼을 가지고 놀다가 발작 때문에 칼이 목에 찔려 죽었다. 하지만 어린이였던 드미트리가 자살할 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고두노프가 드미트리를 암살하고 사고사로 조작했다."고 믿었다.] 어쩌면 죽지 않고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